한국 인디 역사

목차

1980년대 한국 인디의 뿌리 [언더그라운드][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시작 배경[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1970년대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서 펑크록이 엄청난 반응을 일으킴

 [한국] 1975년 유신체제의 시작으로 공연예술 심의가 강화


- 1980년대까지 자유롭게 입수하지 못하던 외국(대부분 영미) 음악들이 수입 시디의 형태로 봇물처럼 들어옴

 음악 애호가들은 최신 조류를 따라다니는 것은 물론,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조류를 찾아내는데 애씀

 [한국] 1980년대 음악 애호가들이 펑크록의 뮤지션을 존경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모티브로 삼아 곡을 카피하거나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접목 시켜 연주를 하는 등 밴드 구성의 음악 흐름을 형성


이 때 형성된 밴드 뮤지션 혹은 1인 뮤지션들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라고 부르게 됨

⇒ 이 시기의 노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 특징

❷ 언더그라운드의 고향 신촌에서 ‘홍대’로의 이동[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국내의 정치적 상황 : 전두환 前 대통령 군사정권으로 음악 규제가 심각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포함되었음)

 국가가 음반에 대한 방송 및 사전심의제도로 엄격히 규제했기 때문에 한국 뮤지션들은 자유롭게 활동하기 힘들었음

1980년대까지 ‘홍대앞’이란 홍익대학교 주변의 대학거리, 특히 와우산로 중심의 피카소 거리라 일컬어지던 미술학원 거리를 의미하였다.


그러던 것이 1984년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을 계기로 신촌과 이대역 상권이 급속히 발달하게 되는 것과 더불어, 서울시는 신촌일대의 상업지역을 대학문화 중심지로 성장시키고자 하였다.


그러한 계획에 따라 마포구도 도시기본계획 을 설계하였는데, 서교 365 골목을 가로형(차도와 보도가 공존하는 형태) 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이른바 ‘걷고 싶은 거리’ 조성안을 발표 하였다(차 우진 2014: 70)(아래의 [표 II-1] 참조).


이후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이어진 아현, 신촌, 홍대, 합정에 이르는 지역의 도시개발은 이들 계획에 의해 진행된 것이었다. 개발계획의 중심은 신촌과 이대입구였다.


1970년대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의 고향인 신촌이 상업지구로 변하자 사람들은 홍대 부근으로 옮겨와 즉자적으로 놀 공간을 만듦

[홍대]가 지닌 지역의 특수성[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1990년대 초반의 홍대[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대는 미대에서 파생된 문화와 낭만적 정취가 어우러진 곳이었음

1994년, 과소비와 호화생활로 언론의 철퇴를 맞은 오렌지족이 이곳으로 근거지를 옮겼다는 기사

매체를 통해 알려지면서 홍대는 이른바 ‘물 좋은 곳’으로 소문

- 1994년에는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압구정으로 가던 오렌지족들의 발길이 홍대로 향함

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들이 ‘홍대’로 몰려들기 시작

홍대앞은 피카소 거리 등 미술 대학 거리로 일부 예술인들 사이에 명성은 약간 가지고 있었으나, 여전히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변두리 주택지역이었다. 그랬던 것이 1992년 서울시의 대학가 건전문화 거리 조성 계획에 의해 진행된 유흥업소 단속 및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인하여 전혀 의도되지 않았던 부수효과로 홍대앞이 일종의 수혜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즉 유흥업소의 단속으로 신촌, 방배동 등 지의 야간 유동인구가 격감하면서 일부가 홍대앞으로 유입되었고, 성수대교 붕괴로 강남과 강북의 연결이 단절되면서 ‘홍대앞’이 새로운 소비 공간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다.


- 미디어를 중심으로 홍대앞은 오렌지족 등의 소비 향락 문화와 구분되는 다른 성격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담론이 형성

- 홍대생들 스스로가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향락적이고 사치스런 소비층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홍대 앞을 오렌지족으로부터 되찾자는 취지의 여러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음

 1993년 10월 마포구청이 후원, 홍대 미술대학 학생회가 주최한 ‘거리미술제’

(‘오렌지족’의 향락문화에 대항하는 문화행사로 기획된 것)


❷ 1990년 중반 이후 홍대[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대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신촌 지역과의 지리적 인접성이 크게 작용

비슷한 시기에 부상한 압구정, 신천, 성신여대와는 다른 ‘예술적 향취’가 더해짐

(신촌 ⇒ 홍대로 옮겨 온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의 영향)


지리적 의미를 넘어 소비산업과 예술문화가 삼투하려 생긴 새로운 문화 지형의 상징

⇒ 앞선 감각의 문화 소비가 가능한 젊은이들의 대표 거리로 부상


1990년대 [주류 음악의 대안][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매체의 변화[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1990년대, 컴퓨터가 주요 매체가 되면서 인디음악의 향유에 변화가 생김

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대표적인 피시통신에는 취향별로 동호회들이 생겨났고,

음악 애호가들 역시 피시통신을 매개로 동호회를 형성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며 누군가 공연을 원하자 공연할 무대를 만들었고,

가구도 아닌 것이 DIY라고 불려졌다. 허술한 장비가 있는 클럽에 밴드들이 등장하고,

전봇대에는 공연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

동호회의 일부 음악 애호가들은 인디 뮤지션이 됨

❷ 주류 음악[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후 기획사는 아이돌 스타를 양산하는 시스템으로 바뀜

거대자본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음악 스타일과 장르를 생각하면서 상품화된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


❸ 주류 음악의 대안적 시스템 ‘인디’[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주류 음악이 아닌 ‘음악적 진정성’을 자신의 음악에 투영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그런 음악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대안적인 시스템’을 생각해 낸 것이 ‘인디’

 이때의 인디 뮤지션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주류음악으로서 인기를 얻고 있을 때 비주류음악이라고 칭하는 음악의 진정성을 갈구하던 뮤지션들끼리 서로 뭉쳐서 독자적으로 밴드를 만들기 시작

 인디 뮤지션들은 대안적 시스템으로 홍대 주변에서 독창성 강한 실험적 인디 음악을 선보임


그러던 와중 1994년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드럭이 생김

홍대 앞 최초의 라이브 클럽 [드럭][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DGBD (前 Drug) ※ 블루데빌스와의 합병으로 DruG & Blue Devil을 줄여서 DGBD를 공식 약칭으로 사용

대표 이석문

출신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코코어, 노브레인 등

- 전화 02-322-3792

- 주소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23

정원 스탠딩 200-250


한국 펑크록 (이른바 "조선펑크") 씬의 산실로 불리는 공연장이었다. 크라잉 넛, 더 락타이거즈등도 이 곳에서 출발하였다. 원래는 극동방송국 근방에 있었으나, 이후 유앤미 블루, 자우림등의 출신지로 유명한 블루 데빌스라는 공연장과 합병을 거쳐 피카소거리로 이전한다. 이후 레이블과 계열분리되어 이전의 드럭 레코드, 블루 데빌스 기획사와는 상관없는 공연장으로 재탄생하였다.


❶ 1994년 7월 드럭의 탄생[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초기 드럭은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조그만 TV들을 소도구로 이용한 바·카페의 형태

한쪽에 밴드들이 연주할 수 있는 그물망이 쳐진 장소가 있다는 것이 특이점

클럽 드럭은 1994년에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밴드 클래시(The Clash)의 [London Calling](1979) 재킷 사진이 복사된 4절지에 ‘펑크록의 이상’이 격문처럼 쓰여진 포스터를 문에 붙이고 개장하였지만, 당시는 정기적인 공연을 염두에 두거나 인디뮤지션들의 근거지 개념은 없었음


[참고영상] 크라잉넛 (CRYING NUT) _ 묘비명 1997년 '드럭' 공연

https://www.youtube.com/watch?v=m7cdtoPwMDg

❷ 너바나 커트 코베인의 사망과 1주기 드럭 추모 공연[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너바나 (Nirvana) 미국의 록밴드

- 멤 버 커트 코베인 (기타, 보컬)

크리스 노보셀릭 (베이스)

데이브 그롤 (드럼)

- 데 뷔 1989년 1집 앨범 [Bleach]

- 대표곡 Smells Like Teen Spirit

장 르 얼터너티브 록


90년대 전 세계 대중음악계를 강타했던 새로운 음악적 조류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는 밴드이며 1990년대·2000년대 록의 흐름을 결정지은 전설적인 록밴드로 평가받음

얼터너티브 록이 90년대 초 음악 시장을 장악하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


1980년대에 생겨나 1990년대부터 말 그대로 헤비메탈 음악의 대안으로 떠오를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록 음악 장르. 'alternative'라는 단어 자체가 '대안적인'이란 뜻


1994년 4월 8일 커트 코베인 사망 (권총 자살) = 인디 음악을 대중에게 알리는 결정적 계기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없다. 그리고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한꺼번에 타 버리는 쪽이 훨씬 좋다는 것을..." <커트코베인 유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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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ells like teen spirits>의 가사 中 Here we are now,entertain us. I feel stupid and contagious.....I'm worse at what I do best (이제 우린 연예인들이야. 난 어리석고 위험에 빠져있지 난 최상의 상태에서 더욱 악화되고 있어)에서 보이듯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들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늘 비판하던 쇼 비지니스, 그 중심부에 오른 자신들의 모습에 심한 강박관념을 느꼈을 것


“90년대 국내 인디밴드들은 너바나의 음악을 카피하는 것부터 시작하거나 곡의 레퍼런스로 정하여 창작곡을 연주하였다. 그러던 중 너바나의 멤버 중 한명이었던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1995년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여 밴드를 연주를 한 것이 인디 신 공연의 첫 시작이었다”

(김현희, 「국내 인디음악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中)


1995년 4월 드럭에서 커트 코베인 1주기 추모 공연 개최

 크라잉넛과 몇몇 밴드들의 인기가 높아지게 되었고, 펑크록을 중심으로 공연이 이루어짐


결정적으로 드럭이 펑크록의 메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96년 스트리트 펑크쇼

1996년 [스트리트 펑크쇼][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스트리트 펑크쇼[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주최 : 중앙일보사 발행의 『서울아이』

일시 및 장소 : 1996년 5월 25일 홍익대 앞 주차장

1996년 5월 26일 명동 코스모스 플라자

참여 가수 : 크라잉넛, 옐로 키친, 갈매기, 레지스터, 벤치 등


펑크족들은 대낮부터 거리로 나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슬램과 모싱 그리고, 다이빙을 선보이며 젊음의 분출구이자 광란의 장을 보여줌

드럭에서 공연하던 밴드들이 주축이 되어 공연에 참여를 하고 나서부터 당시 대중들에게는 새로운 음악 스타일로서 폭발적인 인기로 인디음악을 알릴 수 있게 됨


→ 드럭 → 커트 코베인 추모 공연 → 스트리트 펑크쇼

: 홍대를 중심으로 한 한국 인디 씬 등장의 요인

  • 드럭을 중심으로 한 홍대 앞 라이브 클럽들이 새로운 유행의 대상으로 알려짐
  • 새로움을 갈망하던 대중, 언론·방송 매체의 관심을 얻어냄에 따라 미디어 노출이 시작됨
  • 입소문과 호기심이 더해짐
  • 홍대 지역의 상징적 위치에 비추어 새로운 소비문화로 받아들여 짐



최초의 라이브 인디 앨범 [Our Nation][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크라잉넛&옐로우키친 - Our Nation[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1996~1997년에 인디뮤지션은 홍대 앞에서 집단적 목소리를 형성

 인디 음악이 일종의 ‘운동’으로 발전

더 나아가 홍대뿐만 아니라 점점 외부로 자신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시작함

 그러한 예로 1996년에 스트리트 펑크 쇼에서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드럭에서 첫 라이브 인디 앨범인 「 Our Nation 」이라는 스플릿 앨범을 제작

No. 제목 노래
1 Eveyday 크라잉넛
2 hey  man, What's  your  problem? 크라잉넛
3 핑크 크라잉넛
4 말달리자 크라잉넛
5 Never  Model  Punk  Girl 크라잉넛
6 Balad  Boy 크라잉넛
7 엿장수 맘대로 크라잉넛
8 Grin 옐로우키친
9 Loony  tunas(Y.M.C.A) 옐로우키친
10 Fuzzy  Sorrows 옐로우키친
11 Betty  sticked  the  fork  in  her  eyes 옐로우키친
12 Under  the  people 옐로우키친
13 Orthodox  method  to  enter  mass  view 옐로우키친
14 Untitled 옐로우키친


참여자 크레딧 Produced by : 이석문

Engineer : 신대철

Photography : 안승철

ArtDirection Design : 윤대훈

Recorded at : Purple Zone

Thanks to : 갈매기, Weeper, Bench, 그외 Drug Family


- 1996년 드럭에서 CD와 카세트테이프로 동시 발매


- 크라잉넛과 옐로우키친이 각각 7곡씩 부른 노래들로 구성한 스플릿 앨범 (총 14곡 수록) 수록곡 中 <말 달리자>가 크게 히트


<말 달리자>국내 인디 음악과 홍대 클럽 공연 문화의 확산에 크게 기여 또한 타협을 거부하는 당대 젊은 세대들의 질주 본능을 대변한 인디 명곡으로 평가받음


현재 한국 인디 음악을 대표하는 밴드들 중 상당수가 이 시리즈를 통해 공식적으로 데뷔

 크라잉넛, 노브레인, 옐로우키친, 위퍼, 레이지본, 비바소울 등

 이 앨범을 기획한 이석문 대표는 신인 밴드 발굴을 통해 그들의 재능과 가능성을 찾아내는 선구안을 발휘 : 크라잉넛이 드럭에 처음 찾아와 선보인 오디션 무대는 소음과 난장판에 가까웠지만, 이 대표는 그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연주할 기회를 줌


 참고 다큐멘터리 영화 아워네이션 (45분물)

한경록(크라잉넛), 차승우(더 모노톤즈), 고건혁(붕가붕가 대표), 김작가(음악평론가), 김영등(클럽 빵 대표), 이응민(파스텔뮤직 대표) 등이 출연하여 1990년대 중반 사회변화상과 홍대 앞에서 발생한 인디음악 씬을 중심으로 문화의 궤적을 추적한다. 특히 크라잉넛, 노브레인으로 대변되는 펑크씬과 함께 장기하와 얼굴들 신드롬, 그리고 ‘두리반’ 철거 반대 공연 등 지난 20년간 홍대 앞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대안 문화로서의 인디음악에 대한 역할을 고민한다. ‘아워네이션’은 1996년 발매된 국내 최초의 인디음반의 제목이기도 하다. [제1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홍대 인디 [탄생 이후][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장르의 다양화[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홍 대] 프리버드, 블루데빌, 스팽글, 하드코어, 롤링 스톤즈, 재머스 등 라이브 록 클럽들이 생겨남

[뮤지션] 고스락, 노브레인, 내 귀의 도청장치, 삼청교육대 등 밴드의 등장

[장 르] 펑크를 필두로 헤비메탈, 테크노, 힙합, 하드코어, 네오 어쿠스틱, 뉴 포크 록, 레게, 재즈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수용

본격적으로 8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 대신에 ‘인디 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

홍대 앞의 클럽들이 글로벌하게 매개되는 예술적 창의성과 다양성의 온상이 됨


❷ 펑크록의 공백기[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인디음악이 관심을 받는 것은 잠시, 이목을 끌기 위한 퍼포먼스적인 이미지로 인하여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유흥문화나 광란을 위한 음악으로 여겨지게 됨

 흥미 유발을 위한 이미지 보도로 인하여 대중들에게는 인디 음악의 음악성과 내용이 알려지지 않음

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실험적인 괴상한 음악이라는 편견

 음악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음악, 마니아층들의 음악, 언더그라운드의 음악 등으로 오해

 록의 반항적인 이미지들로 인하여 대중들에게 인디 음악은 ‘하위 문화적 반항’이라는 상징이 되어버림


- 1997년 IMF가 터지면서 경제 위기가 닥치고 팬들의 음원 구매량 저하로 인하여 대중음악의 음반 판매와 공연 활동은 활기를 잃음

 인디 음악 생산자들은 공연 활동을 찾기가 어려워서 생존의 문제에 직면

1세대 인디밴드 뮤지션들의 군입대 등의 문제로 인하여 인디음악에 포함되어있는 펑크록은 공백기가 생김


 펑크록은 몇몇 소수의 사람들만 관심을 갖는 비주류음악으로 자리매김

1999년 [공연클럽의 합법화][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공연클럽 = 불법영업[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라이브 클럽, DJ 공연클럽, 코미디 클럽, 전통공연클럽 등 공연클럽은 불법 영업이었음


- 이유 : 가수, DJ, 코미디언, 악사 등 문화예술인이 모두 유흥접객원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유흥접객원을 고용 및 출연시키기 위해서는 유흥주점으로 허가를 받아야 했음

 공연클럽은 불법 영업을 한다고 비난을 받으며 많은 단속을 당함


※ 유흥주점으로 허가를 내면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유흥주점 신규허가가 제한되어 받을 수가 없었고, 유일한 방법은 영업 중인 유흥주점을 인수하는 방법인데 당시에도 유흥주점의 권리금은 빌딩 몇 채 정도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어 재정이 부족한 밴드들이 인수하기는 불가능하였다. 또, 어렵게 투자를 받아 유흥주점을 인수하였다고 하더라도 라이브클럽의 운영목적은 저렴하게 술 또는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관람하게 하는 것인데 당시 유흥주점은 사치성 서비스업에 해당되어 소비자에게 부가가치세 10% 외에 26%의 특별소비세(현재는 개별소비세 13%)를 부담하게 하여 국가에 납부해야할 의무사업자기 때문에 이용요금을 고가로 책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저렴한 가격책정은 불가능하였다.

❷ 문화예술인의 노력 → 식품위생법 개정[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드럭(1994) 프리버드(1995), 재머스(1996), 롤링스톤즈(1996) 등 라이브 클럽들이 1997년에는 개클연(개방적인 클럽연대)으로 뭉쳐 ‘클럽합법화 투쟁’에 나섬


- 코미디계의 대부 고 김형곤이 코미디클럽을 운영

- 전통문화예술계의 명인 김운태는 대학로에서 두레극장이라는 공연클럽을 운영

 이들은 방송국과 공연장에 서지 못하는 실력 있는 무명문화예술인을 선보이며 많은 스타 예술인을 배출

 1998년 무허가 유흥주점영업으로 사법당국에 단속을 당하고, 국세청으로부터 특별소비세 30억을 부과 당하며 폐업을 하는 사건이 발생

- 이에 문화예술계는 문화예술인을 유흥접객원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


1999년 11월 13일 식품위생법 개정으로 공연클럽 합법화

[클럽데이]와 [사운드데이][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클럽데이(2001)[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2000년을 전후해 한국담배인삼공사 KT&G가 홍대 앞에 진출해 인디 뮤지션을 지원하는 문화사업 시작

홍대 놀이터 건너편에 공연기획 사무실을 두어 지원금을 관리하도록 함

지원금의 일부로 클럽데이가 개최

※ 현재 위치한 KT&G 상상마당 홍대는 2007년 9월 개관


=> 김마스타의 증언에 의하면 다시 홍대 인디씬 구성원들의 반응은 호의적, 더 나아가 대기업 자본을 유치하고자 하는 움직임까지 있었다고 함. 지역 상업화에 따라 치솟는 임대료에 시달리던 클럽 운영주들과 음악인들에게 활력이 됨


2001년 3월 마지막 주 금요일, ‘클러버들 하나되는 날 Clubber’s Harmony’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시작

4개 클럽 동참 : <MI> <nb> <Underground> <SSAB>

 800명의 관객을 모으게 되면서 2회부터는 10개의 클럽이 동참 (매월 마지막 주 진행)


주간지, 방송국, 대학언론까지 홍대 클럽데이를 취재

언론 홍보와 맞물려 2002년 월드컵을 기점으로 폭발적 성장

 2002년, 인디 예술인들의 ‘프린지 페스티벌(前 독립예술제)’과 프리마켓의 시작으로 ‘홍대 앞’ 활성화


1990년대 이전 홍대 앞의 공간이 ‘예술씬’이었다면,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늘어난 음악 공간의 확대와 빈번해진 공연은 홍대 앞은 국내 유일무이 ‘인디음악씬’으로 성격 짓기 충분해졌다.

❷ 사운드데이(2003 or 2004)[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2004년부터 사운드데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음악을 한 장의 티켓으로 들을 수 있는 행사를 진행

2007년 12월 사운드데이에 참여했던 9개 라이브클럽이 80회 클럽데이를 기점으로 기존 클럽데이와 통합


2005년 [카우치 사건][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MBC 음악 캠프 성기노출 사건[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당시 인디밴드는 주류 음악 중심인 공중파 방송에 출연하기가 힘들었던 상황

 당시 주류음악을 중심으로 방송하던 <MBC 생방송 음악캠프>의 고재형 PD는 인디음악의 좋은 점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어 대중들이 잘 모르는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코너를 새로 만듦


2005년 7월 30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인들을 소개하는 코너인 〈이 노래 좋은가요〉 신설

첫 무대로 펑크밴드 [럭스]가 무대를 돕기 위한 20여명의 펑크인들과 무대에 올라 <지금부터 끝까지> 공연

간주 중에 20명 무리에 속해있던 카우치 멤버 1인과 스파이키 브랫츠 멤버 1인이 무대에서 바지를 벗고 뜀 (성기 노출)  6~7초간 생방송


❷ 카우치 사건으로 인한 영향[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 끼친 영향

① 당시 음악캠프의 진행을 맡고 있던 MC몽과 신지는 사과 방송을 했으며 방송국은 사과 자막을 내보냄

② 당시 담당 PD이자 홍대의 숨은 실력파를 소개하고자 했던 고재형 PD는 책임을 지고 프로그램 하차

③ 당시 MBC 예능국장 김영희 국장 자리에서 물러남 (정확한 처분 내용 확인 필요)

④ <생방송 음악캠프>는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중징계 처분으로 폐지

⇒ 후에 <쇼! 음악중심>으로 재탄생


❙ 인디 씬에 끼친 영향

① 2009년까지 지상파 방송 3사 음악프로그램에서 인디 밴드의 무대를 볼 수 없게 됨

② 당시 서울 시장이었던 이명박 시장은 2005년 8월 1일, 서울시 정례 간부 회의에서 MBC '생방송 음악캠프' 노출 사고와 관련해 " 공연팀을 조사해 퇴폐공연팀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각 구청을 통해 그런 불법 공연이 이뤄지는 곳을 일제 점검하라"라고 지시

③ 2005년 8월 4일, 경찰은 MBC '음악캠프' 생방송 중 발생한 노출 사건을 계기로 홍대 라이브 클럽으로 수사확대 방침을 발표했고 홍대 라이브 클럽에 대한 경찰 단속이 대대적으로 실시


 비의 음반제작자였던 박진영에게는 비의 스캔들을 무마시키기 위해 카우치에게 돈을 주고 생방송 전라 노출 사고를 지시했다는 루머가 생김, 박진영은 사건이 2년이 지난 2007년 3월 14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비-이효리 루머를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놀랐지만, 그 사건을 무마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뒷돈을 썼다는 소문이 더 어이없었다”라고 부인

❸ 홍대 앞 음악인 비상 대책 위원회 긴급 기자회견[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홍대앞 음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라이브음악문화발전협회 김영등 회장, 전 황신혜밴드 출신의 조윤석, 문화기획자 류재현 및 이현숙 등이 주축이 돼 결성

2005년 8월 2일 오전 11시 홍대 앞 이리카페에서 진행

“홍대 앞에는 30여개의 공연 클럽과 500여개의 밴드들이 활동 중이다. 500여개의 밴드들은 밴드의 개수만큼이나 다양한 음악장르와 자신만의 표현방식과 언어를 갖고 있다. 홍대 앞 인디음악이 쏟아내고 있는 독창성과 창조성은 바로 이 다양성에 기초하고 있다. 우발적 방송사고로 인해 홍대앞 인디음악문화 전체가 매도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며 매카시즘적 비난과 당국의 비문화적 대처에 비판을 가했다.

 [출처] 알몸 노출 카우치 사건 10년, 실체와 파장은?[배국남의 X파일] (2015.07)

http://enter.etoday.co.kr/view/news_view.php?varAtcId=49587#csidx69a886f193d629aa82b9091d07546a5


2세대 인디뮤지션의 등장 (1)[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2000년대 중반에도 꾸준히 명반은 나오고 있었지만 대부분 1세대들의 작품

2000년대 이후 음반시장이 축소되면서 전체 대중 문화산업의 주도권이 영화 쪽으로 넘어감

홍대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 (라이브 클럽⇒댄스 클럽)

 뮤지션들의 설 자리가 좁아짐


 새로운 바람이 필요했던 인디 씬에 ‘2세대’라고 일컬을만한 뮤지션들이 등장

❶ 갤럭시 익스프레스[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그룹명 : 갤럭시 익스프레스

멤 버 : 이주현(베이스/보컬) 박종현(기타/보컬)

김희권(드럼/코러스)

소속사 : 러브락

결 성 : 2005년 10월 (확인 필요)

데 뷔 : 2007년 EP앨범 [To The Galaxy]

수 상 :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탈진 로큰롤'이라고 불리는 정신나간 라이브가 강점인 밴드. 정규 앨범을 내기 전부터 그야말로 공연만으로 인디 음악 팬들의 이목을 끌어왔으며, 정규 1집(Noise On Fire/2008)을 통해 인디 신 내에서는 메이저급으로 발돋움하였다. 이 무렵이 바로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검정치마 등의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디 2세대'가 막 등장하던 2008년. 위의 그룹들과 함께 인디 음악의 중흥을 이끌어낸 밴드들 중 하나이다.


❷ 장기하와 얼굴들[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그룹명 : 장기하와 얼굴들 (2018년 해체)

멤 버 : 장기하(보컬) 이민기(기타) 정중엽(베이스)

이종민(건반) 하세가와 요헤이(기타)

전일준(드럼)

소속사 :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데 뷔 : 2008년 싱글 앨범 [싸구려 커피]

수 상 : 2012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상


눈뜨고코베인과 청년실업의 멤버였던 장기하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록 밴드.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 일컬어진다. 카우치 사건 이후로 등장한 2세대 인디의 아이콘이다. 대한민국 인디 아티스트 대중화의 선두에 섰던 그룹으로 7080 포크가요를 떠오르게 하는 보컬 장기하 특유의 창법과 랩, 그리고 우리말의 특색을 잘 살린 가사가 인상적인 밴드이다.


❸ 국가스텐[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그룹명 : 국가스텐

멤 버 : 하현우(기타/보컬) 전규호(기타)

이정길(드럼) 김기범(베이스)

소속사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初 루비살롱 레코드)

데 뷔 : 2008년 싱글 앨범 [Guckkasten]

수 상 : 2018년 제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사이키델릭 록밴드로서 현재 자우림, 장기하와 얼굴들, NELL 등과 함께 한국 록 씬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밴드이다.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그램인 헬로루키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❹ 검정치마[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그룹명 : 검정치마

멤 버 : 조휴일

(2004년 뉴욕에서 3인조 펑크록밴드로 시작)

소속사 : BESPOK (初 루비살롱 레코드)

데 뷔 : 2008년 검정치마 1집 앨범 [201]

수 상 : 2020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


2004년에 미국 뉴욕에서 3인조 펑크 록 밴드로 처음 결성하였고 현재는 싱어송라이터인 재미교포 조휴일이 유일한 멤버로 원맨 밴드이다. 한국 인디의 르네상스였던 2008년, 말 그대로 ‘갑툭튀’한 데뷔 앨범 [201]은 신인의 풋풋함과 베테랑의 노련함을 동시에 가진 걸작이었다. 동시대 미국 인디 록의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되 거기에 빼어나고 적나라한 한국어 가사까지 녹아 들었다. 이 의외의 등장은 평단과 언론의 상찬을 불렀다. 당시의 앨범 발매 얼마 후 있었던 발매 기념 공연은 물론이고, 2009년 가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섰을 때는 낮 시간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체조 경기장이 꽉 차는 진풍경을 만들기도 했다.


2세대 인디뮤지션의 등장 (2)[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2008년, 갤럭시 익스프레스, 장기하와 얼굴들, 국가스텐, 검정치마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며 인디씬의 부활이 시작되었음

주류 음악을 아이돌이 독식하게 되면서 밀려난 라디오 친화형 음악들과 서서히 지분을 넓혀가던 어쿠스틱 계열의 음악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함

1990년대 펑크씬을 지탱해주던 소비자가 10~20대 남성 중심이었다면 모던록은 20대 여성을 기반으로 함

 1990년 인디 씬을 상징하는 단어가 ‘반항’ ‘분노’였다면, 2000년대 인디씬은 ‘일상’ ‘서정’들로 대표됨

: 이러한 변화는 ‘취향’이 대세를 이끌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 (여성 뮤지션 증가)

❶ 브로콜리너마저[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그룹명 : 브로콜리너마저

멤 버 : 덕원(보컬/베이스) 잔디(키보드)

류지(보컬/드럼) 향기(기타)*2020탈퇴

소속사 : 스튜디오 브로콜리

결 성 : 2005년

데 뷔 : 2007년 EP 앨범 [앵콜요청금지]

수 상 : 2010-2011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노래 부문


'탈진 로큰롤'이라고 불리는 정신나간 라이브가 강점인 밴드. 정규 앨범을 내기 전부터 그야말로 공연만으로 인디 음악 팬들의 이목을 끌어왔으며, 정규 1집(Noise On Fire/2008)을 통해 인디 신 내에서는 메이저급으로 발돋움하였다. 이 무렵이 바로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검정치마 등의 개성과 실력을 겸비한 '인디 2세대'가 막 등장하던 2008년. 위의 그룹들과 함께 인디 음악의 중흥을 이끌어낸 밴드들 중 하나이다.


❷ 에피톤프로젝트[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그룹명 : 에피톤프로젝트

멤 버 : 차세정

소속사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前 파스텔)

데 뷔 : 2006년 싱글 앨범 [1229]



토이의 유희열, 015B의 정석원 · 장호일과 같은 작곡가 중심의 프로젝트 그룹이며, 차세정 1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006년 데뷔작인 싱글 앨범 《1229》를 발표했고 꾸준히 음악활동을 이어나간다. 2008년 여름 파스텔뮤직과 계약을 맺고, 2009년 미니앨범 《긴 여행의 시작》을 발표했다. 에피톤프로젝트가 이름을 알리는데에는 싸이월드가 큰 역할을 했다. 싸이월드 BGM으로 소비하기에 인디 음악들이 잘 맞는다는 평가를 계속해서 받았고, 이후 온라인 음악이 활성화되며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2007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MF][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2007년부터 매년 10월 말에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로 1년간 진행한 민트페이퍼의 공연 민트페스타를 결산하는 의미로, 도심 속의 페스티벌을 지향

음악 컨셉은 락보다는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팝에 가깝고 해외 아티스트 보다는 국내 인디 위주


일시 2007년 10월 6일

제작 퍼레이드

장소 서울 올림픽 공원

주최 민트페이퍼


홍대 앞 라이브클럽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고, 펑크·하드코어 밴드가 공연할 수 있는 클럽이 한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인디 부흥의 열기를 더한 것은 2007년 시작된 ‘그랜드민트페스티벌’이었다. 이 음악 축제는 해외 유명 록 밴드를 청하지 않아도, 1990년 싱어송라이터의 맥을 잇는 2000년의 뮤지션들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페스티 벌을 개최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었다.


2007년도에는 기존 여름 시즌 락 페스티벌과 홍대 클럽의 강한 사운드적인 음악 분위기와는 상반된 컨셉으로 감성적이거나 모던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들과 가요와 접점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모은 ‘그랜드 민트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국내 인디밴드들부터 해외의 인디밴드들, 그리고 이승환, 윤상 등 메이저급 싱어송 라이터까지 모두 한자리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첫 회부터 화제를 모았던 이 페스티벌은 이후 해마다 더욱 관객들을 늘려나가면서 기존 락 팬들의 범위를 넘어서서 범대중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가을 시즌 가장 인기 높은 음악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미디어]를 통한 인디의 활성화[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EBS 스페이스 공감[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채널 EBS1

기간 2004.04.03. ~ 방영중

일시 (금) 밤 12:00

소개 국내외 최정상 아티스트부터 재능 있는 신진 아티스트까지 록, 팝, 재즈, 클래식, 월드뮤직, 국악 등 장르와 관계없이 오직 좋은 음악을 통해 관객과 공감하고자 하는 프로그램


제작 2004년 4월 3일 소프라노 신영옥과 재즈 뮤지션 이정식 등의 합동 공연 방송으로 시작했다. 시작할 당시 양질의 음악 공연을 매일 제공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EBS 자체 내에 공연장이 필요했으나 사내에 마땅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1층 강당을 리모델링했고 이 때문에 약 300m2 크기의 공간에 객석이 151석에 불과한 소규모 공연장이 만들어졌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불과 3m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비좁은' 공연장 덕분에 관객과 연주자가 함께 호흡하며 친밀감을 높일 수 있게 됐다. 제작진의 이런 생각은 실력파 신인 뮤지션을 소개하는 '헬로 루키 콘테스트'로 튀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이 콘테스트는 '장기하와 얼굴들'과 '국카스텐' 등 실력파 인디 밴드들을 대중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제작진은 인디 밴드와 클로드 볼링 등 세계 정상급의 음악가를 골고루 초청하기 위해 매주 출연자 선정 회의를 한다. 한 주 동안 새로 나온 음반을 모두 들어보고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선정 작업을 통해 그동안 3천여 명이나 되는 많은 뮤지션이 출연했다. 장르도 재즈를 비롯해 클래식, 포크, 록, 힙합, 펑크, 월드뮤직, 국악, 민중가요까지 다양하다. 그렇다 보니 '스페이스 공감'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지원자 수는 객석 수의 10배 이상이다. 지금까지의 최고 공연 신청 경쟁률은 2005년 12월 방송된 뮤지컬 콘서트 '크리스마스 인 러브' 편으로 무려 146대 1이었다. 제작진은 치열한 경쟁 가운데 신청자의 '공평한' 관람을 위해 10번 지원하면 1번 정도는 당첨시킨다고 언급했다.


축소 논란 EBS 스페이스 공감 10주년을 앞둔 12월 27일 전국언론노조 EBS 지부는 본사가 자사의 대표 프로그램인 <스페이스 공감>의 무료 공연 횟수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EBS 신용섭 사장은 <스페이스 공감>의 무료 공연 횟수를 주 5일에서 2일로 줄이고, 제작 PD 또한 3명에서 2명으로 감축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공연 횟수와 인력, 제작비가 대폭 줄어들어 사실상 프로그램의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신용섭 사장의 결정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규정과 절차를 무시한 독단적인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 사태는 사측의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반적인 비용절감 추세가 맞물린 결과였다.


이전에도 라라라, 유앤아이를 비롯한 공중파 음악프로그램들이 낮은 시청률과 제작비의 문제로 인하여 폐지되는 사태가 적지 않았으나, EBS 스페이스 공감 축소에 대한 논란은 이례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BS 스페이스 공감이 10여년 간 공익성을 중심으로 좋은 음악을 소개하고, 방송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잘 노출되지 않은 뮤지션들의 공연을 제공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스페이스 공감 축소가 발표되자, 작곡가 김형석을 비롯하여 뮤지션 및 음악 관계자 등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이 결정에 우려를 표하였으며, 스페이스 공감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축소 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이 높아졌다. 이러한 와중에 재즈 베이시스트 최은창을 중심으로 여러 뮤지션들이 스페이스 공감 축소 반대 공연 <EBS Space 공감을 지켜주세요>를 기획하였다. 이어서 스페이스 공감 축소에 우려를 표하는 뮤지션 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EBS Space 공감 축소 반대 릴레이 콘서트'가 진행되었는데, 1월부터 2월까지 약 한달 동안 브이홀, 클럽 타, 클럽 에반스, 클럽 오뙤르, 롤링홀 등에서 락페스티벌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관객들은 5,000원의 입장료로 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약 두달동안 진행된 기획 공연에는 말로, 나희경, 허소영, 장기하와 얼굴들, 한음파,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로큰롤라디오, 아시안 체어샷, 허클베리 핀, 갤럭시 익스프레스, 잠비나이, 데이브레이크, 야야, 해리빅버튼을 비롯한 많은 재즈 뮤지션과 밴드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고, 스페이스 공감 축소 사태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뮤지션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하여 스페이스 공감 축소 사태가 언론을 통해 부각되고, 대중들의 관심과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EBS는 기존의 프로그램 축소 결정을 철회하고 주4회의 공연을 진행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헬로루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2007년에 시작된 '신인발굴 프로젝트'다. 매달 동영상 심사와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정된 2팀을 EBS 스페이스 공감의 무대에서 '이 달의 헬로루키'로 소개해왔다. 2008년부터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한국 콘텐츠 진흥원, 네이버(NHN), (주)소리바다 등이 함께하여 질적, 양적인 성장을 이뤄 연말결선무대가 탄생했고, 선정팀에게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등 대형 페스티벌 출연의 기회를 주어왔다. 2014년 현재는 5월부터 9월까지 매달 2팀의 헬로루키를 선정하고 와일드카드 1팀을 선정하여 연말결선무대에 오를 팀을 선발하는 최종 경연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달의 헬로루키로 선정된 팀은 스페이스 공감홀에서 진행되는 '이달의 헬로루키' 방송을 녹화하게 된다.

 2세대 인디 활성화 시기의 헬로 루키

❙ 2008년 (일시 : 2008년 11월 29 / 장소 : 광장동 멜론악스)

《2008 인디뮤직 페스타 헬로루키 OF THE YEAR》에는 국카스텐, 한음파, 고고스타, 드라이 플라워, 장기하와 얼굴들, 마제, 바플라이 등 7개팀이 올해의 헬로루키 최종후보로 선정되어 출전했다. 차승우, 장윤주가 MC를 맡았으며 김창완 밴드와 언니네이발관이 축하공연을 펼치고 문샤이너스가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 2009년 (일시 : 2009년 11월 14일 / 장소 : 올림픽공원 내 펜싱경기장)

《한국대중음악축제 - 올해의 헬로 루키》에는 데이브레이크, 박주원, 아폴로 18, 흠, 노리플라이, 텔레파시, 좋아서 하는 밴드 등 7개팀이 출전했다. 이 무대에는 위 7개팀뿐 아니라 김수철, 이승환, 피아, 장기하와 얼굴들, 국카스텐, 한음파, 검정치마, 브로콜리 너마저, 슈프림팀이 출연했고, MC를 맡은 김C와 장윤주가 밴드 뜨거운 감자와 함께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 2010년 (일시 : 2010년 12월 4일 장소 : 고대 화정체육관)

《EBS 스페이스 공감 Special Live - 2010 올해의 헬로 루키》에는 더 유나이티드93, 랄라스윗, 프렌지, 야야, 김나현밴드, 가자미소년단, 더 큅 등 7개팀이 출전했다. 이 무대에는 위 7개팀뿐 아니라 봄여름가을겨울, 크라잉넛, 클래지콰이, 스윗 소로우, 국카스텐, 아폴로 18, 슈프림팀이 출연했고, MC를 맡은 장기하와 장윤주가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다.

=> 당시 주류음악으로 소비되는 장르는 ‘아이돌 음악’이었다. 2008년 Mnet MKMF에서 원더걸스, 빅뱅,동방신기의 음악이 최첨단장비로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을 때, 헬로루키는 ‘인디계의 MKMF’라 불릴 정도로 최고의 인디밴드들이 한자리에 모여 뜨거운 무대를 선사했다.

❷ 영화와 드라마, CF 등에 쓰이는 인디음악[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인디 음악은 이제 점점 단순히 음반을 듣고 공연을 보는 것만이 아닌 다양한 미디어로의 진출을 시도

인디 음악이 새로운 자생력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의미를 보여주는 흐름


그동안 인디 음악이 가진 아마추어리즘으로 대변되는 마니아적이고 비대중적인 음악이 미디어를 만나면서 더욱 진지한 뮤지션의 면모로 이미지를 탈바꿈 시켜주고 있음


EX) 에브리 싱글 데이 (데뷔 : 1999년 1집 앨범 [Broken Street])

2008년을 맞아 4집 ‘The Bright Side'를 발매 하게 되는데 이 앨범은 드럼에 대한 부분만 스튜디오 녹음으로 이루어 지고 모든 작업을 멤버들의 손으로 만 작업하기에 이르렀고 이 앨범의 곡들은 이후 2010년 MBC TV 드라마 <파스타>에 주제가 및 배경음악으로 삽입되게 되어 음악감독까지 맡게됨


 이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에브리 싱글 데이‘는 그 이후로 2011년 MBC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 2012년 MBC 드라마 <골든 타임>, 2013년 SBS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 2013년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들려>, 2014년 MBC 드라마 <미스코리아>, 2014년 TV N 드라마 <갑동이>, 2015년 SBS 드라마 <피노키오>에 이르기 까지 밴드의 활동을 하게됨

❸ SNS의 등장[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온라인 시장은 PC 상용화 그리고 통신 보급률 세계 1라는 국내 정보통신 환경과 IT산업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200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시장이 확되었으며, 2003년도부터 오프라인시장의 매출을 역전하기 시작

- SNS의 등장과 함께 인디 음악계는 긍정적인 영향을 받음

 이전에는 무대 활동이나 방송을 통해서만 대중에게 음악을 소개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SNS는 음악을 손쉽게 영상이나 디지털 음원의 형태로 공유될 수 있는 콘텐츠로 변형시킴. 즉 음악의 홍보가 쉬워지게 되어, 자본의 도움 없이도 홍보, 제작할 수 있게 됨

다양한 인디 산업계는 이를 활용해 독자적인 음악성과 변화된 시장 구조를 활용하며 한국 음악계에서 인디 음악의 자리를 넓힘


싸이월드 (1999년 8월 1일) / 버디버디 (2000년 1월 13일)

페이스북 (2004년 2월 4일) / 유튜브 (2005년 2월 14일) / 인스타그램 (2010년 10월 6일


❹ 음반 시장↓ 음원 시장↑

- 1999년 벅스

2000년 소리바다

2001년 모모플

2003년 엠넷뮤직

2004년 네이버뮤직, 멜론(삼성뮤직 통합)

2005년 도시락(*올레뮤직, 현 지니뮤직 통합)

2011년 지니뮤직

2013년 카카오뮤직

2014년 밀크

2015년 유튜브뮤직, 애플뮤직(*한국은2016), FLO

2018년 VIBE(前 네이버 뮤직)

CD시장으로 대표되던 오프라인 시장의 격한 붕괴와, MP3 방식으로 압축된 음원을 제공하는 서비스, 즉 실시간 음원 제공방식을 취하는 스트리밍 서비스나 모바일 서비스 등 온라인 시장의 급부상


1999년 무렵 MP3의 등장모바일 음원 서비스의 활성화로 국내 음악 산업은 오라 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임


 MP3의 등장은 국내 음반 산업이 다양한 소비층을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 고객인 10~20를 온라인상으로 이동하게 함


엠넷에서는 메인 화면 상단의 ‘장르 음악’의 하위 카테고리인 ‘록’부문에 ‘인디’라는 하위 카테고리를 만들어 인디를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으며 국내, 국외 인디음악 모두를 소개하고 있다.

벅스에서는 인디음악을 메인 화면 상단의 ‘장르별 음악’에서 ‘인디 뮤직’을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 보고 있고, ‘D.I.Y로 음악 씬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 려가는 인디 뮤직’이라고 인디음악을 설명하고 있으며 엠넷과는 달리 인디를 국내에 한정 지어 분류하고 있다.

멜론 또한 벅스와 유사하게 ‘가요’ 장르 하에 ‘인디음악’이라는 하위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았으며 국내 인디음악에 한정 지었다.

도시락도 마찬가지로 ‘가요’ 장르 하에 ‘인디’라는 하위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았으며 역시 국내 인디음악에 한정 지었다.


 음원 사이트에서도 인디음악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존재를 부각시키기 시작함으로써

인디음악이 대중화 되는 데 큰 역할을 함


❹ 오디션 프로그램의 부흥[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2009년 오디션 프로그램 부흥에 신호탄을 날린 슈퍼스타K 시즌1을 시작으로 아이돌이 점령한 주류 음악시장의 ’보는 음악‘에서 대중의 또 다른 니즈를 충족 시킬 ’듣는 음악‘이 떠오르게 됨


❙ 2009년 Mnet 슈퍼스타K 시즌1

채널 Mnet

기간 2009년 7월 24일~2009년 10월 10일

일시 (금) 밤 11시

우승자 서인국 준우승 조문근


❙ 2010년 Mnet 슈퍼스타K 시즌2

채널 Mnet

기간 2010년 7월 23일~2009년 10월 22일

일시 (금) 밤 11시

우승자 허각 준우승 존박


❙ 2011년 Mnet 슈퍼스타K 시즌3

채널 Mnet

기간 2011년 8월 12일 ~ 2011년 11월 11일

일시 (금) 밤 11시

우승자 울랄라세션 준우승 버스커버스커


❙ 2011년 SBS 일요일이좋다-K팝스타 시즌1

채널 SBS

기간 2011.12.04. ~ 2012.04

일시 (일) 오후 6시 10분

우승자 박지민 준우승 이하이


❙ 2012년 SBS 일요일이좋다-K팝스타 시즌2

채널 SBS

기간 2012년 11월 18일 ~ 2013년 4월 14일

일시 (일) 오후 5시

우승자 악동뮤지션 준우승 방예담


[인디 스타]의 등장[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❶ 무한도전 가요제[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인디가수 연도 가요제명 무한도전 멤버 참여곡
10cm 2011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하하 찹쌀떡 - 센치한 하하
장미여관 2013년 자유로 가요제 노홍철 오빠라고 불러다오 – 장미하관
혁오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 정형돈 오대천왕 - 멋진 헛간
  • [장미여관]은 KBS 2TV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TOP밴드>에 출연해 높은 음악성을 보여주면서 한차례 화제
  • [장기하와 얼굴들] 무한도전 멤버들이 ‘유재석과 면상들’이라는 이름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을 패러디해 화제


2009년 이후 2년 마다 한 번씩 개최하는 '무한도전 가요제'는 음원 시장을 점령하며 '킬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무한도전 가요제'는 이른바 '인디 원석' 발굴의 장이다. 2009년 멤버들끼리 무대에 오른 '강변북로 가요제' 이후 2011년에는 듀엣 가수와 작곡가가 참여하는 포맷을 도입해 본격적인 '참여형 가요제'가 문을 열었다.


'강변북로 가요제' 최대의 수혜자를 꼽으라면 하하와 '센치한 하하'를 결성했던 남성듀오 10cm였다. 권정열과 윤철종은 이 가요제를 통해 '죽을래 사귈래'와 '찹쌀떡'을 선보였고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큰 사랑을 받았다.


'무한도전 가요제'는 10cm의 음악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2010년 벅스 뮤직어워드 인디 부문 2위,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선정 '올해의 신인', 엠넷아시아뮤직어워드 '올해의 발견' 등에 선정되기도 했던 10cm였지만, 대중적인 인지도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무한도전' 출연 이후 기존에 발표했던 '사랑은 은하수 다방', '아메리카노' 등도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히트곡 반열에 올랐다.


2013년 방송한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역시 신성 발견의 장이었다. '올림픽대로 가요제'가 기존 가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이 함께해 가요제의 완성도와 위상을 높였다면,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음악가들에게 대중적인 인지도를 선사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주인공은 노홍철과 '장미하관'으로 손을 잡았던 장미여관이었다. KBS2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 2'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장미여관은 '무한도전'의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를 통해 날개를 제대로 달았다.


장미여관은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노홍철과 '오빠라고 불러다오'를 히트시킨 것은 물론 '봉숙이'까지 재조명 받게 만들며 순식간에 '대세'로 거듭났다. 이른바 장미여관의 '장미호텔' 변신이었다.


특히 '무한도전'에서 보여준 장미여관의 매력은 육중완이라는 새로운 예능스타를 탄생시켰다. 이들은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로 진정성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했으며 MBC에브리원 '장미테레비'로 털털한 모습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특히 육중완은 MBC '나 혼자 산다'로 망원동의 명물이 되기도 했다. 아울러 장미여관은 KBS2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에 출연 음악성으로도 인정을 받으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온 2015년. 이번 가요제의 최대 수혜자가 혁오라는 점에서 이견을 보일 사람이 있을까. 혁오는 오혁(보컬, 기타) 임동건(베이스) 임현제(기타) 이인우(드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다. 이들은 최근 방송하고 있는 MBC '무한도전'의 '무한도전 가요제 2015'에 출연해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냈다.


소녀시대와 씨스타, 걸스데이, AOA 등 가요계가 '걸그룹 대전'으로 뒤끓고 있는 사이, 혁오는 '차트 역주행'으로 본격적인 가요제 인기몰이에 시동을 걸었다. 이들의 '와리가리' '위잉위잉' '후카(Hooka)' 등은 방송 후에도 쟁쟁한 아이돌 사이에서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본 무대에서도 혁오의 뜨거운 인기는 입증됐다. 혁오와 정형돈은 지난 13일 오후 8시부터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솔봉로에 위치한 알펜시아 리조트 내 스키 점프 경기장에서 열린 MBC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 출연, 컨트리풍 음악에 돌아온 탕자 이야기를 입힌 '멋진 헛간'으로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자축의 의미에서 시작해 어느덧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무한도전 가요제'. 이들이 발견한 인디 원석들로 인해 음악 팬들의 귓가는 더욱 풍성한 들을거리로 채워지고 있다.

❷ 방송 후 역주행[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잔나비 MBC <나혼자 산다> 289회-290회 2019.04.

리더 최정훈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아날로그적인 일상을 공개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이들의 인기는 더욱 높아짐. 모두가 치열한 '초고속' 경쟁을 하는 5G 시대에 2G 폴더폰을 사용하고, MP3 플레이어로 박인희의 번안곡 '스카브로우의 추억'(1970)과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1987)를 듣고, 틈날 때마다 시집을 탐독하는 27살 청년의 모습은 이들의 음악과 실제 감성이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면서 방탄소년단을 뛰어넘어 음원차트 1위를 기록


❙멜로망스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382회 2017.09.16.

출연 : 멜로망스, 폴킴, 선우정아, 치즈, 잔나비, 위아더나잇

지금은 유명곡인 <선물>은 발표 당시 100위권에도 들지 못할만큼 저조한 성적을 기록 했으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후 음원 발매 3개월만에 음원차트 1위로 역주행을 기록함


❙볼빨간사춘기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334회 2016.09.09

2014년 슈퍼스타K6에서 혼성 4인조로 주목을 받은 뒤 여성듀오로 정규 1집

‘RED PLANET’의 <우주를 줄게>로 데뷔. 주목에 비해 저조한 성적이었으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이후 방송 다음날부터 SNS 급속도로 영상이 퍼지면서 음원차트 1위 기록


❙신현희와 김루트 <BJ 꽃님>의 별풍선 리액션을 통해 유행

BJ꽃님이 신현희와 김루트의 곡 ‘오빠야’에 맞춰 리액션을 선보인 것이 화제

이후 음악방송 등에 모습을 보이며 인기 상승


대표곡
우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