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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 인터뷰 (1부)

박주연 인터뷰 01-작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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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연은 1990년대 발라드를 대표하는 작사가다. 변진섭 ‘숙녀에게’, 윤종신 ‘오래전 그날’, 김민우 ‘입영열차 안에서’같은 명곡들이 그녀의 손에서 나왔다. 한국형 발라드의 멜로디를 대표하는 이들은 손에 꼽을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만든 주인공을 박주연이라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작곡자 주영훈은 자신의 수업에서 박주연의 가사를 다룬다고 말할 정도다. 현재 해외에서 거주중인 박주연이 자신의 가사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 1900년대 발라드의 아름다운 사연들이다.


처음에는 가수로 데뷔하셨습니다. 1984년‘그대는 왠지 달라요’라는 노래였죠.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이었어요. 제 노래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인기가 있었었어요. ‘그것만이 내 세상’, ‘제발’, ‘매일 그대와’, ‘어떤 날의 하늘’ 이런 거. 아, ‘너무 아쉬워하지 마’도 있구나. 여덟 곡인데 틀어 놓으면 끝까지 다 듣게 되는 앨범이었어요.


어떤 계기로 그 앨범에 참여하셨나요.

대학 콘테스트에서 자그마한 상을 받게 됐어요. 그러다가 CM송을 부르게 됐어요. 메인 송을 부르는 게 아니라 그 코러스 주로 하는 거 있잖아요. 화음 깔고 그러는 걸 좀 했었어요. 그러다 음악 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때 들국화의 최성원 선배님도 있었어요.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앨범을 제작한다고 노래를 하나 불러보라 하시더라고요.


원래 전공은 뭔가요?

도서관학인데 음악하면서 늦게까지 놀다 보니까 잘 못 일어나겠더라고요. 2학년 끝나고 결국 그냥 관뒀어요. 뭐가 되고 싶은 건 없었는데 그냥 노래하는 게 좋았었어요. 가수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노래하면서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뱅뱅사거리에 있던 심플라이프라는 곳을 아시나요? 당시 많은 음악인들이 모였다고 들었어요.

거기 언니랑 잘 알아서 거기서 사진을 찍었어요. 1집 낼 때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 선배님이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어요. 속지도 써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고 좋은 말도 해주셨죠. 도와주신 분 너무 많아요. 제가 최성원 선배님 가사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저보고 가사를 써도 되겠다고 말씀해주셔서 칭찬받는 느낌이 들었죠.


본격적인 작사는 어떻게 시작하신건가요.

노래를 하기는 했지만 망했잖아요. 그래서 많이 쉬었어요. CM송 같은 거 하다가 여러분들을 알게 됐는데 대부분 싱어송라이터고 작곡하시는 분들이다보니 곡은 완성이 됐는데 가사가 없는 거예요. 그 분들도 아는 작사가가 없으니까 니가 직접 한번 써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연습을 해야 하니 썼어요. 제가 쓰다 보니까 아무래도 제 입에는 잘 맞잖아요. 그러니까 이걸로 한번 가 보자 해서 녹음을 했거든요. 몇 년 지난 후에 하광훈 씨가 변진섭 가사를 한 번 써볼 생각이 없냐고 하더라고요.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냥 써라, 하던 대로 하면 될 것 같다고 해서 마침 그 때 써 놓은 게 있어서 하기로 했어요.


그게 변진섭 2집이었죠.

1989년 10월인가 11월인가에 변진섭 2집이 나왔는데 7~8월에 가사를 썼어요. 앨범이 발표되고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그때도 저는 작사가가 된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곧바로 저한테 의뢰가 들어오더라고요. 조용필 씨한테요. 그래서 화들짝 놀랐거든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이제 그랬으면 좋겠네’였죠?

네. 그때가 1990년 1월이었었어요. 굉장히 추웠던 날 썼던 기억이 나요. 과연 내가 이분 얘기를 어떻게 써야 되나, 떨어가면서요. 그렇게 놀라운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한 달 있다가 김민우 씨 1집을 하게 됐어요. 작곡가는 하광훈, 윤상 딱 둘. 그 때도 “어머나, 이거 써도 되나?”했어요.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는 거 있죠? 그래서 CM송 코러스를 관두고 1997년까지 일을 했어요.


하광훈 씨하고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는지요.

방배동에서 여러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차도 마시던 시절이 있었어요. 김현식 오빠도 자주 마주칠 수 있었고. 키보드 치던 (다섯손가락, 위대한 탄생의) 최태완 씨도 그렇고 많은 분들을 알게 됐어요. 하광훈 씨도 그때 만났어요. 나중에 왜 가사를 쓰라고 했냐 물어봤더니 제가 말하는 게 좀 특이했대요. 하광훈씨가 굉장히 예민해요. 감각이 굉장히 빨라요. 그래서 그분 때문에 작사하신 분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한 1~2년 하고 다른 분들하고 하게 돼서 더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하광훈 씨한테 감사함이 있어요.


어떤 작곡가들과 작업하셨죠?

제가 일을 많이 하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하광훈 씨, 김형석 씨와 많이 했죠. 그다음에 윤상, 윤종신 씨, 신재홍 씨 곡도 참 좋아해요. 그리고는 그냥 한두 곡 정도 하신 분들은 있어요.


다른 음악하시는 분들 말씀 들어보면 가사를 함축적으로 두 줄로 끝내버리는 사람이 박주연이라고 하더라고요. 가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뭔가요.

곡이에요. 곡을 들을 때 나한테 어떤 느낌을 주는지 그게 가장 중요해요. 네 마디, 여덟 마디 들으면 내가 쓸 수 있을지 없을지 알아요. 곡이 저한테 들어올 때는 보통 둘 중 하나거든요. 피아노로 멜로디 라인과 코드만 입혀서 주거나, 편곡이 거의 끝난 상태거나. 저한테는 멜로디 라인과 코드 진행이 중요했어요. 그러니까 들으면 이런 우스갯소리를 하죠. 아, 이건 가족 코드네? 이건 감격 코드네? 이런 식으로요. 예를 들어서 C에서 E7으로 가면 약간 감격스러운... 그런 게 있거든요. 어렸을 때 연주곡을 좋아했었어요. 연주곡을 듣다 보면 상상하게 되잖아요. 그 영향으로 곡을 계속 듣는 거에요. 그 멜로디가 나한테 주는 느낌으로 가사를 상상하는 거죠.

그 다음에는 가수에 대한 느낌을 제가 받아야 돼요. 가수랑 얘기를 하면서 ‘아, 이 사람은 어떤 발음을 하면 참 예쁘겠다’ ‘이 사람은 어떤 발음이 강점이 있구나’ 예를 들면 고음에서 ‘야’가 편한지 다른 발음이 편한지 파악하는거죠. 그 때 도움이 된 게, 제가 노래를 조금 했었었잖아요. 그러니 저한테 편하면 다른 가수한테도 편해요. 곡은 너무 좋은데 나랑 안 맞는 거 있어요. 정말 너무 쓰고 싶은데 안 오는 게 있어요. 그럼 저랑 안 맞는 거에요. 그럼 2~3주 지나서 죄송하다고 거절할 때도 있고 나름대로 아픔이 있어요.


그럼 작사 의뢰가 들어왔을 때 내용에 대한 부탁도 없는 상태에요?

대부분은요, 예를 들면 정석원 씨가 ‘너의 결혼식’을 작곡했거든요. “어떻게 써 줄까요?” 그랬더니 그냥 슬프게 해달래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이건 좀 울게 해 주세요 라든지, 아니면 알아서 써달라고 해요.


가사의 내용은 어디서 영감을 받으신건가요?

지금은 안쓰지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를 썼어요. 가사를 쓸 때 한 10년치 일기장을 뒤적거리다보면 그 때 그 마음이 확 다가와요. 그 마음을 발전시켜서 여기서 좀 따오고 저기서 따오고 해서 썼죠. ‘입영열차 안에서’는 한 3~4년에 걸친 얘기에요. 친구들도 군대 갔었고, 사귀었던 남자가 군대를 간 경우도 있었고. 1990년에 윤상씨에게 곡을 받았는데 못 듣던 스타일이라 깜짝 놀랐어요. 너무 세련된 미디엄 템포인거예요. 그래서 이 노래엔 어떤 가사를 쓰기 바라냐고 물어봤더니 윤상씨가 어떤 아름다운 여자에 관한 얘기를 썼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알겠다고 하고 계속 들었어요. 노래가 좋아서 시대와 상관없이 계속 사람들이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뭐 있을까... 언제든지 누군가는 군대를 가니까 한번 군대 가는 얘기를 해 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해서 쓴 거에요.


윤상씨가 꽤 까다롭죠.

멜로디 라인을 까다롭게 짜다보니 윤상씨 노래는 가사 수정을 참 많이 했어요. 어쩔 때는 가사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 허밍으로 처리한 노래도 있고. 멜로디를 부르면서 부딪히는 발음 수정을 많이 했는데 ‘입영열차 안에서’는 한 자도 안 고쳤어요. (시작하는 가사를) 얘기해 보라고 해서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는 싫었어” 그랬더니 캬아~. 군대 얘기라 그래서 사실 걱정을 했는데 되게 마음에 든다고 그냥 한 번에 OK가 됐죠. 단번에 OK 되는 경우가 드물거든요.


박주연씨 가사는 첫 줄 하나로 설명이 다 끝나요. 의도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성격이 조금 급해서 모 빼고 도 빼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해요. 그냥 친구들하고 얘기할 때도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먼저 얘기를 해요. 성격이고 말투죠. 가사도 마찬가지예요. 노래를 듣고 내가 받은 느낌을 먼저 쓰고 싶어요. 어떤 상황이 있을 때 ‘여기서 내가 뭐 때문에 가장 놀랐지?’ ‘내가 뭐.. 내가 여기서 뭐 때문에 마음이 움직였지?’ 그 얘기부터 쓰고 싶어요. 그래야 제가 편해져요, 제가 얘기를 잘 못 만들어요. 예전에 백일장에서 소설같은 거 쓰면 세 장으로 다 끝났어요. 길게 늘이지를 못해요.


‘입영열차 안에서’나 ‘오래전 그 날’같은 노래를 보면 박주연씨는 남자의 심리를 참 잘 아시는 것 같습니다. 비결이 있나요.

간단한데요. 제가 듣고 싶은 말을 써요. 남자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걸 써요. 대부분 그래요. ‘오래전 그날’은 며칠 전에 기타 하나로 녹음해서 보내줬는데, 듣는 순간 너무 좋았어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남자의 성장 과정을 한번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멜로디의 첫 마디가 네 음절이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교복을 벗고’로 해야할 것 같은 거에요. 첫 마디를 뭘 할까 했더니, 원래 네 글자였어요. 원래 멜로디가 그게 노래는 (노래) 교복을 벗고~ (노래 끝) 이거잖아요. 그런데 원래는 (노래) 따다다다~ 따라라라~ (노래 끝) 이렇게 온 거예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 보니까 ‘어? 이거는 교복을 벗고를 해야 될 것 같은 거예요. 왜냐하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 살에 첫사랑을 만나는 건데 그거 설명하려면 네 음절을 다 쓰거든요. 그런데 딱 한마디로만 표현하고 싶었어요.세월이 지나가는 걸 쓰고 싶은데 (첫 소절인)’교복을 벗고‘가 네 음절인 거예요. 그래서 윤종신씨한테 전화해서 이거 다섯 글자로 하자고 했어요. 2절은 “새 학기가” 네 자여도 되니까.

그리고 또 하나 있어요. “오늘 난 감사”에서 “오늘 난” 부분에는 원래 음이 없었어요. “미움도 커졌었지만” 다음에 따다~ 이거였었어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상황 설명이 하나가 필요한 거예요. 제가 멜로디를 넣으라 그래서 “오늘 난”이 들어간거죠. 그리고 사실은 처음썼던 가사가 달라요. 원래 가사는 “그리고 지금 내 곁엔/나만을 믿고 사는 한 여자와/잠 못 드는 나를 달래는/내 아기의 숨소리만이”에요. 그 때 정석원씨가 하는 말이 23,24살 밖에 안되는 윤종신을 유부남으로 만드는 거 아니냐고 해서 “그리고 지금 내 곁엔/나만을 믿고 있는 한 여자와/잠 못 드는 나를 달래는 오래전/그 노래만이“로 바꿨어요. 저는 사실 그렇게 쓰고 싶었거든요. 그래야지 더 잠 못 잘 것 같아서요. 저는 가사가 너무 세다는 말을 들어서 고친 게 참 많아요.


가사의 스토리텔링은 계획하신건가요.

(김장훈의)‘나와 같다면’을 레퍼런스로 들께요. 곡을 받았는데 정말 좋았어요. 사실 김장훈 씨가 부른 게 오리지널이 아니에요. 박상태라는 가수가 부르고 최태완 씨가 편곡을 한 게 있어요. 형식도 달라요. 오리지널은 A 있고 A-가 있고 B로 넘어가는데 김장훈 씨는 A 다음에 B로 가요. 거기 사진 얘기가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사실 그게 A-였었어요. 김장훈 씨 버전은 김현철 씨가 편곡을 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노래를 계속 듣는데 친구가 놀러왔어요. 저는 뭔가 정리를 하던 중에 옛날 누구 사진이 나와서 보고 있었어요. 친구가 방에 쓱 들어오더니 너 뭐 그렇게 한참 보냐? 그러고 나가더라고요. ‘내가 왜 그 사진을 한참 봤지? 기분 나빴으면 보자마자 찢었을 텐데 나는 이걸 왜 한참 봤지?’ 이 얘기를 발전시켜서 썼어요.

사진 찢는 상황이려면 아무도 없는 게 낫겠지? 그러면 약속도 없이 혼자 집에서 정리하던 중에 사진이 나와야겠지? 그 사진을 나는 한참 바라볼까? 찢을까? 그렇게 쓰게 된 경우예요. 직접적으로 설명 안 하고 상황 설명을 해 주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게 좀 폼나 보였나 봐요.


김민우의 ‘사랑일 뿐야’는 어떻게 쓰셨죠?

어렸을 때 연남동, 연희동에서 살았던 경험에서 썼어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한 30년을 산 집이 있는데 골목길을 딱 꺾어 들어가면 집 옆에 외등이 있었어요. 그 외등을 보면서 ‘나중에 남자친구 생기면 여기까지 나를 데려다주겠지?’ 생각하고 그랬어요. 이 경험을 써먹으려고 작정을 하고 쓴거에요. 그 외등을 보고 쓴 거죠. “언젠가/너의 집 앞을 비추던 /골목길 외등 바라보며/길었던 나의 외로움의 끝을” 이 부분을 쓰고 싶었어요.


심상을 담아낼 미장센을 일기장에 보관했다가 그때그때 꺼내서 활용하는 거네요.

일기장이 주로 많죠. 가슴에 상황이 사진처럼 찍히는 경우가 있잖아요.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잊고 살잖아요. 그럴 때 일기장도 도움이 되겠고. 음악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그냥 듣던 음악인데도 어느 순간 나한테 확 와 닿아서 처음 들었을 때의 상황으로 데려다주잖아요. 제가 가사를 쓰다 보니까 그런 상황들을 의식적으로 더 기억하려고도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람들 만나면 어떤 일이 있을 때 듣고, 또 질문 하죠. “그런데 그때 너 기분 어땠는데?”라고. 귀를 열면 더 들리고 눈을 크게 뜨면 더 보이니까 그러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은 모르겠어요.


의뢰에 따라 가사가 달라지나요?

주로 20대 남자들의 곡을 많이 쓴게 그런 노래들이 오니까 쓴거지 의도한 건 아니에요. 주문을 받아 일하는 프리랜서니까. 고객 입장에 맞췄죠. 그래서 이 사람이 20대인지, 또 여자인지 남자인지에 따라 어투를 좀 바꿔야 되고 써야 되는 단어도 어느 정도는 있죠. 물론 말투나 단어는 달라져도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은 거의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만 유의했던 것 같아요.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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