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8군

해방(1945) 이후의 대중음악[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해방 이후 38선 이북은 소비에트 군대, 이남은 미 육군 24사단에 의해 점령 1945년 12월 27일 신탁통치안 발표 후 한반도는 사상정, 정치적으로 혼돈의 시기를 겪게 됨 이 시기 음악인들은 음반 취입이나 방송 출연으로 생계 해결이 어렵게 됨 이유: 일본인 스태프와 기술자들의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음반 생산시설과 배급 네트워크가 사실상 붕괴 음악인들은 대부분 라이브 공연에 의존해 소득을 얻던 상황

당시 음악인들의 공연장 악단은 당시 경제 수준에서는 상당한 보수를 받으며 직업음악인으로서 활동함

  1. ① 식민지 시대부터 활동한 악극단의 극단
  2. ② 경성 도심에 있던 수개의 댄스홀, 카바레
  3. ③ 미군 클럽


미군들이 대규모로 우리나라에 주둔하게 되면서 그들을 위한 위문공연이 활발

이전 시기와 달리 일본의 음악과 다른 외래음악으로서의 서양음악이 아닌, 미국의 대중음악이 직접적으로 우리나라에 상륙하게 된 것
본토에서 내한한 미국 연예인들을 통해 대중음악을 가시적으로 접하게 됨.
특히 미8군 클럽 무대에서 대중음악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게되면서 미국의 대중음악이 접목되고 학습되어짐
밥호프, 마릴린먼로, 쟈니 그랜트 등
※ 위문공연에 대한 기록은 주로 미국위문협회(USO : United Service Organizations)를 통해 확인 가능



MARILYN MONROE - KOREA 1954 영상 아카이브

미8군 클럽[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풍요롭고 화려한 대중문화산업을 통해 대중음악을 향유하고 소비하던 미군들에게, 음악은 고향을 느끼며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하는 주요 요소였음
  1. 해외주둔 병사를 위해 기지마다 술과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클럽을 설치
  2. 처음에는 기계에 동전을 넣으면 음악이 나오는 쥬크박스를 설치했으나 기계를 통한 일률적인 연주만으로는 병사들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고, 공연을 통한 유흥이 펼쳐지면서 쇼의 형태로 발전


미8군 한국 음악인 고용[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미국 연예인들이 내한하여 위문공연을 했으나, 대규모로 주둔한 주한미군의 유흥의 일상적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
- 결국 일상적인 공연을 위해 한국 연예인들이 고용됨
- 한국 연예인들이 미군을 위한 공연을 시작한 시기 : 1952년으로 추정
- 미군 클럽의 일거리를 맡아오는 속칭 ‘매니저’가 있었고, 음악인들이 모였던 다방에 찾아가 즉석에서 악단을 만들거나 팀을 이룬 악단을 데리고 미군기지로 갔다고 함 => 처음에는 악단을 위주로 해 미군에서 흘러나오는 당시 유행 음악을 연주하다가 차츰 플로어쇼(패키지쇼)라는 명칭으로 노래와 춤이 섞인 무대를 선보이기 시작

미8군쇼 관련 음악단체 생성[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미8군 쇼 무대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쇼의 구성을 갖춘 흥행 단체가 등장

=> 그러나 이때까지는 체계적인 기관으로 성립된 것은 아니고 개별적으로 모여든 연주인 가수인들이 모여 쇼를 단위로 흥행 단체를 조직함

- 1957년, 미8군 쇼무대 계약들 일괄대행업체 화양기업 탄생 - 1958년, 미군은 한국의 연예 에이전시에 의해 조직되고 관리되는 쇼단을 고용하기 시작

=> 일괄대행업체는 우수한 쇼단에 선급을 주고 선점하는 방식의 영업방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단순한 연예인 공급기관 이상의 연예기획사 역할을 함.

미8군 주관 오디션[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 일괄대행업체가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미8군 주관 오디션 준비’
→ 쇼단의 출연여부와 출연료가 측정되는 기준 → 멤버들의 능력 개발과 역량 있는 신인발굴에 힘씀
- 분기별로 용산 USIS의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무대에 설 수 있었음
- 쇼단은 외국 음악을 국내에 소개하는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었고, 더불어 외화 획득에 일역을 담당


미8군 스타 탄생[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1. 1) 1세대 명연주자들 (1950년대 초~) 엄토미 / 김광수 / 손석우 / 김호길 / 송민영 / 노명석 등
  2. - 해방직후 미8군 무대 체계화 전부터 음악을 해오던 명연주자들은 미8군 무대와 일반 무대를 오가며 연주
  3. - 엄토미 악단과 김광수 악단이 경음악 양대산맥
  1. 2) 2세대 여성중찬단 – 미8군 최대 수혜자들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중반) 박단마, 홍청자, 이인숙 트리오 / 김시스터즈 등


김시스터즈 : 1953년 <KPK 쇼단>으로 데뷔

김시스터즈는 미군부대에서 주로 활동을 하다가 미국 연예인을 불러들이던 <팀불>이라는 흥행사에 의해 1959년 라스베이거스에 진출, 1970년대까지 활동함



김시스터즈 - 목장의 노래 영상 아카이브

  1. 3) 미8군 무대에서 시작해 방송과 일반무대로 진출해 대중가수로 자리 잡은 케이스 (1960년대~) 손시향 / 한명숙 / 최희준 / 현미 / 패티김 / 윤복희 / 장미화 / 조영남 / 윤향기 등


윤복희 미8군 무대 영상 아카이브

대표곡
우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