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기획

동아기획.png

기본사항[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창작곡으로 노래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음반기획사.

소속 가수[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조동진, 들국화, 김현식, 시인과 촌장, 한영애, 신촌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철, 장필순, 빛과 소금, 이소라, 푸른하늘, 한동준, 박학기, 김장훈, 유영석, 코나 등등 엄청난 면면을 보여준다.

동아기획 가수 모음 영상 아카이브

(00:00) 한영애 - 누구 없소

(03:56) 신촌블루스 - 황혼

(06:20) 장필순 - 어느새

(10:54) 봄여름가을겨울 - 어떤 이의 꿈

(14:04) 빛과소금 - 샴푸의 요정

(17:57) 김현식 - 골목길

(20:06) 푸른하늘 - 눈물나는 날에는

(22:57) 푸른하늘 , 장필순 , 박학기 - 아름다운 세상

(27:06) 조동진 - 제비꽃

(31:53) 들국화 - 행진

(37:11) 김현철 - 달의 몰락

(40:56) 이소라 - 난 행복해

(45:31) 시인과 촌장 - 가시나무

(50:45) 김장훈 - 나와 같다면


1985년부터 1994년까지 대한민국에서 특히 발라드, 포크, 블루스, 퓨전 재즈 계열에서 아티스트라고 분류되던 가수들은 거의가 이 곳 소속이었다. 유재하조용필, 어떤날 정도만이 예외일 뿐. 참고로 유재하도 동아기획 음반에 작곡가와 연주자로 가요계에 등장했고, 윤상유희열도 마찬가지다.


어린 나이의 연습생을 뽑아서 장기간의 트레이닝 끝에 상품으로서의 아이돌을 생산하는 2000년대 이후의 연예 기획사와는 달리, 당시의 동아기획은 여러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모인 말 그대로 크루에 가까웠다. 김영 사장은 소속사 가수들의 음악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해 주는 보조자로, 음악은 가수가 알아서하고 회사는 주로 음반유통과 콘서트 같은 음악 이외의 활동에만 주력하는 형태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 이수만의 1호 작품 현진영과 대중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대중의 취향이 변화하였다. 그리고 가요계는 김창환이란 프로듀서를 중심으로 신승훈, 김건모, 클론, 박미경, 노이즈, 채연, 콜라 등이 모인 라인음향과 015B윤종신, 신해철(N.EX.T), 전람회(김동률) 등이 소속되어 있었던 대영AV가 주도하게 된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MP3의 범람으로 음반시장이 사실상 붕괴하는 상황이 도래한다. 이제 라인음향과 대영AV 마저 이런 시대적 변화속에 밀려나고 아티스트 보다는 아이돌을 내세운 SM엔터테인먼트과 DSP미디어가 출범하고 YG와 JYP까지 가세하면서 가요계는 철저하게 기획형 틴아이돌-댄스뮤직 중심으로 재편된다. 그리고 동아기획은 완전히 몰락하였다.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1999년에 'See U(씨유)'라는 여성 아이돌 그룹을 내기도 했지만 성과는 전혀 없었다. 2000년에는 실력파 여성 듀오 '허쉬'와 '하니비(JS)', 힙합트리오 'LLK Camp'를 배출해기도 했으나 이들이 마지막 가수였다.


동아기획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바로 김장훈이다. 두장의 정규앨범을 냈으나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김장훈을 데려와 3, 4집을 제작하였고, 1998년 4집의 '나와 같다면'이 35만장이 팔리면서 성공하게 된다.


참고로 김장훈의 1집은 빛과 소금의 박성식, 김현철 등 동아기획의 일원이 참여하였으나 정확히는 유재하 1집을 제작했던 서울음반의 문예부장인 조원익이 제작했다. 당시 김장훈 1집 앨범작업에 참여한 유희열도 1집의 제작이 서울음반이라는 것을 방송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2집은 삼성뮤직에서 발매되었다.


동아기획은 2000년대 초반에 새로운 돌파구로 홍대인디 뮤지션들의 음반을 제작하지만, 상업적인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한다. 이때 나온 음반들이 황신혜밴드, 도시락특공대, 어어부밴드 등이다.


2000년대 이후 동아기획의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의 크루로서의 포지션은 조동진과 조동익 형제가 이끈 하나음악(현 푸른곰팡이)이 이어받는다.

발매 음반[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Bravo, My Life! - 봄여름가을겨울의 7번째 정규 앨범

I Photograph to Remember - (기억을 위한 사진들)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번째 정규 앨범

Yoon Sang Best - 윤상의 베스트 음반

그대 안의 블루 - 안성기, 강수연 등이 출연한 이현승 감독의 1992년 영화《그대 안의 블루》의 사운드트랙

김현식 3집 - 가수 김현식의 정규 3집 음반

바라본다 - 가수 한영애의 두 번째 정규음반

봄여름가을겨울 2 - 봄여름가을겨울의 두 번째 정규 앨범

빛과 소금 Vol.1 빛과 소금의 첫 번째 정규 음반

숲 (음반) - 그룹 시인과 촌장의 정규 음반 3집

슬픔과 분노에 관한 - 이소라의 정규음반 3집

신촌블루스 Ⅱ 그룹 신촌블루스의 정규 음반 2집

영화에서처럼 - 이소라의 정규음반 2집

이소라 Best - 데뷔 7년을 정리하는 1999년에 발매된 《이소라 Best》음반

이소라 Live - 이소라의 4집 앨범 활동 이후인 2001년에 발매한 라이브 음반

이소라 vol.1 - 이소라의 정규음반 1집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 - 김현철의 3집 정규 앨범 등.


관련 기사[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레이블을 알면 음악이 보인다! 국내 편- 6. 동아기획[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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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태훈. 2016.03.29.


1980년대 중후반은 한국 대중음악이 찬란한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시기였다. 그 중심에는 ‘동아기획’이 있었다. 1982년에 동아기획을 설립한 김영 대표는 1978년부터 광화문에서 레코드점을 운영하면서 국내외의 다양한 음악을 섭렵했고 한국 대중음악의 정체된 흐름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직접 뮤지션을 발굴하고 음반을 제작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으로부터 그 해답을 찾았다.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언더그라운드의 메카[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당시 가요 시장은 몇몇 이름있는 작곡가와 인기있는 가수의 히트곡들이 차트를 점령하면서 트로트와 발라드 일색의 편중된 흐름을 한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들국화와 시인과 촌장, 조동진과 김현식, 신촌블루스와 봄여름가을겨울, 한영애와 장필순, 김현철과 박학기, 푸른하늘과 빛과소금 등 소위 말하는 동아기획 사단 뮤지션들이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도를 뒤바꿔 놓았다.


동아기획의 등장은 실력있는 뮤지션의 발굴과 제작 지원, 그리고 앨범 발매와 홍보까지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기획사로서의 레이블 개념을 정착한 시초였을 뿐만 아니라 모던 포크와 블루스 락, 뉴웨이브와 퓨전 재즈 등 장르적 다변화를 통한 한국 대중음악의 질적인 향상을 불러온 분명한 성과를 남겼다.


아울러 언더그라운드의 반란을 주도한 동아기획 사단 뮤지션들은 방송 출연을 자제하면서 공연장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것에 사명감을 갖고 있었고 이는 공연 문화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동아기획 사단 뮤지션들은 당시 많은 가수들이 부딪혔던 한계인 “창작의 자율권”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자유롭게 자신의 장르적 스타일과 음악적 사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는 솔로와 밴드, 장르와 스타일을 막론하고 동아기획을 통해 좋은 작품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었고,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 뮤지션”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동아기획은 지구레코드와 오아시스, 성음 등 당시 존재하던 레코드 제조사들 중 최초로 좋은 소리의 구현에 앞장섰던 레이블이었다. 이 역시 김영 대표가 레코드점을 운영하면서 가요보다 팝과 클래식 음반의 판매고가 높은 것에 의문을 갖고 직접 손님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여 조악한 사운드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식하고 레이블 운영의 철학으로 삼게 된 것이었다.


예컨대, 당시 가요 음반은 보통 2채널로 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데 반해, 동아기획은 미국에서 기자재를 수입하고 일류 레코딩 엔지니어를 기용하여 16채널 음반 시대를 열었다.

1985년에 제작된 들국화 1집은 그 첫 작품이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이른바 “동아기획 사운드”는 그러한 김영 대표의 남다른 장인정신으로부터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동아기획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크라잉넛(Crying Nut)을 위시한 인디 씬의 반란, H.O.T.와 S.E.S.가 주도한 틴 팝 시대의 도래 등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격변기의 흐름에서 동아기획은 점차 영향력을 잃어갔다.

상업적인 흐름과 결탁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의 순수한 가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동아기획의 침체와 몰락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국화가 데뷔 앨범 이후 더 이상 완전체 밴드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인 것과 김현식의 비극적인 사망이 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도 분명하다. 이는 동아기획 뿐 아니라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훌륭한 음악적 영감을 지닌 뮤지션들의 창작력과 소속 뮤지션들의 끈끈한 연대를 통한 음악적 공동체로서의 강한 결집력, 그리고 그것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앞서가는 기획력이 결합된 동아기획의 운영 철학은 이후 많은 인디 레이블들에 영향을 미쳤다.


(후에 이 코너를 통해 다루게 될) 이른바 “조동진 사단”으로 불렸던 하나뮤직(현 푸른곰팡이)은 동아기획으로부터 파생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레이블이었고, 현존하는 비트볼 레코드와 파스텔 뮤직, 루비살롱 레코드와 플럭서스 뮤직 등 고유한 음악적 개성을 추구하는 레이블들도 동아기획의 정신을 귀감으로 삼아 보다 다양한 음악이 공존할 수 있는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동아기획의 대표 앨범[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들국화 - [들국화 Ⅰ] (1985)[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들국화의 데뷔 앨범은 한 마디로 “혁명”의 결과물이었다. 들국화의 존재가 특별했던 것은 당시 자리잡고 있던 그룹사운드 전성기 다음 단계로의 진화를 보여주었다는 점인데, 걸출한 싱어송라이터이자 연주자였던 멤버들의 균등한 역할을 통한 “밴드” 음악의 표본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비틀즈(The Beatles)의 [Let It Be]를 오마주한 앨범 커버는 그만큼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멤버들의 의욕과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격앙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선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행진’과 한국형 락 발라드의 명징한 표본이라 할 ‘그것만이 내 세상’을 위시한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9곡의 수록곡들은 각자의 개성이 모인 최상의 합을 증명한다.

“한국적인 락 음악”이라는 명제는 다분히 추상적이지만 들국화의 데뷔 앨범을 설명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요컨대, 이 완벽한 데뷔 앨범의 주인공은 물론 들국화지만 이들이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면서 완전한 창작의 자율권을 보장한 동아기획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는 것 또한 주지할 사실이다.

들국화1.png


들국화Ⅰ

들국화 / 1985.09.10 정규

[타이틀곡]행진



김현식 - [김현식 III] (1986)[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2집에 수록된 ‘사랑했어요’와 ‘어둠 그 별빛’이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얼굴없는 가수로 서서히 이름을 알렸던 김현식 또한 동아기획을 통해 제작된 3집에서 비로소 만개한 음악성을 펼쳐내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중추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이전 앨범들의 세션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김현식은 자신의 밴드를 조직하여 보다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구현하고자 했는데 그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봄여름가을겨울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본 작에 참여한 봄여름가을겨울은 김종진과 전태관, 장기호와 박성식(전임 유재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은 후에 봄여름가을겨울과 빛과 소금으로 각각 독립하여 역시 동아기획을 둥지로 활동하게 된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세션 밴드의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작곡에도 상당 부분 관여하면서 앨범의 완성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앨범 최고의 히트곡 ‘비처럼 음악처럼’은 박성식이 만든 곡으로 김현식의 혼이 담긴 보컬을 통해 빛을 보게 된 명곡이다.

‘빗속의 연가’와 ‘비오는 어느 저녁’, ‘떠나가 버렸네’와 ‘눈내리던 겨울밤’ 등 당시 거의 절정의 기량이었다고 할 김현식의 보컬과 퓨전 재즈와 블루스 락의 진한 향취를 재현하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연주가 만들어내는 최상의 궁합은 들국화의 데뷔 앨범과 더불어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찬란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김현식3.png


김현식 III

김현식 / 1986.12.05 정규 3집

[타이틀곡] 비처럼 음악처럼



시인과 촌장 - [푸른 돛] (1986)[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1981년에 발매한 1집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포크 듀오 시인과 촌장은 동아기획을 통해 다시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는 1집에 참여했던 오종수 대신 합류한 기타리스트 함춘호의 역할이 실로 컸다고 할 수 있는데, 그는 모든 창작을 하덕규에게 일임하고 오로지 연주에만 집중하면서 시인과 촌장의 음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하덕규 특유의 여리고 섬세한 감성의 매력이 빛을 발하는 ‘비둘기에게’와 ‘사랑일기’가 라디오 히트를 달성했지만 앨범의 진가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1990년대에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와 같은 그런지 밴드가 구사했던 어둡고 음산한 정서가 부각되는 ‘고양이’와 데이빗 길모어(David Gilmour) 풍의 서정적인 프로그레시브 스타일을 지향하는 ‘얼음무지개’와 같은 곡들은 당시 기존 포크 음악의 관점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준 것이었다.

즉, 시인과 촌장의 본 작은 들국화 데뷔 앨범의 “포크” 버전과도 같은 인상을 주는데, 이는 흡사 전인권의 포효와도 같은 반전을 보여주는 마지막 곡 ‘비둘기 안녕’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들이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가치관이 들국화의 저항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시인과촌장.png


푸른 돛

시인과 촌장

1997.05 정규

[히트곡] 사랑일기, 풍경, 고양이



봄여름가을겨울 - [봄여름가을겨울] (1989)[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봄여름가을겨울의 등장 역시 한국 대중음악의 또 다른 가능성을 증명한 쾌거였다. 대중가요와 퓨전 재즈의 이상적인 결합을 보여준 이들의 성공은 당시 대중들이 새로운 음악에 목말라있었다는 것을 방증하기도 하지만, 마니아들만의 고급스러운 취향을 대변하던 재즈라는 장르를 난해하지 않게 풀어내면서 대중음악의 영역으로 안착시킨 김종진과 전태관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앞서 발표된 동아기획의 걸작들이 “노래”로서는 물론이고 “연주” 음악으로서의 훌륭한 완성도를 지향해왔다는 점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데뷔 앨범은 그 궁극의 완성을 보여준 결과물이었다.

김현식의 영향이 느껴지는 애절한 발라드 ‘내가 걷는 길’과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자유분방한 활력을 담은 퓨전 락 ‘혼자걷는 너의 뒷모습’을 비롯해 연주 음악도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음을 증명한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과 ‘거리의 악사’, ‘12월 31일’ 등 대중성과 음악성의 균형과 더불어 새로운 음악 스타일의 표본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봄여름가을겨울.png


봄여름가을겨울

봄여름가을겨울 / 1989.03

[타이틀곡]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한영애 - [바라본다] (1988)[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한영애는 1988년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누구없소?’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졌지만, 이정선과 함께 한 포크 그룹 해바라기의 멤버로 1977년에 데뷔하여 세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한 경력이 있었다.

그녀는 상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앨범 발매가 무산된 것에 상심하여 음악을 그만둘 결심을 하고 한동안 연극 무대에서의 활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길이 음악임을 깨닫고 동아기획을 발판삼아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프로듀서 송홍섭의 지휘 아래 동아기획 사단 최고의 세션 멤버들이 참여한 본 작은 한영애가 비로소 자신의 끼를 완전하게 발산하면서 김정미와 김추자의 계보를 잇는 독보적인 여성 보컬리스트로서의 위상을 획득한 작품이다. 윤명운(‘누구없소?’)과 이영재(‘호호호’), 유재하(‘비애’)와 이정선(‘여인 #3’), 이승희(‘코뿔소’)와 한돌(‘갈증’) 등 참여한 많은 작곡가의 명단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한영애는 좋은 곡을 직접 만들어내는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떤 곡이든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앨범을 지배하는 그녀의 탁월한 보컬 실력은 훌륭한 뮤지션을 평가하는데 있어 작곡가로서의 능력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는 동아기획 사단의 마지막 주자인 이소라를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1990년대 이후 개성있는 여성 보컬리스트 계보의 형성에 실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한영애 바라본다.png


바라본다

한영애 / 1988.09 정규

[히트곡] 누구없소?



신촌블루스 - [신촌 Blues II] (1989)[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동아기획에서 나온 결과물들이 하나같이 높은 수준의 음악성과 완성도를 담보했던 것은 바로 소속된 뮤지션들의 끈끈한 유대감을 통한 활발한 교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고정적인 멤버를 두지 않고 매번 새로운 뮤지션들이 참여했던 신촌블루스는 동아기획의 그러한 공동체 정신이 가장 잘 발현된 집합체였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정서용과 한영애, 정경화와 이은미는 신촌블루스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면서 솔로 활동의 교두보를 마련했고, 또한 밴드를 거쳐간 한영애와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의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신촌블루스가 구현하고자 했던 “한국적인 블루스”의 정서는 동아기획 사단 뮤지션들에게 전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엄인호와 이정선이 마지막으로 함께 하면서 최고의 앙상블을 이뤄낸 본 작은 당시 이미 유명하던 김현식이 참여한 ‘골목길’의 히트와 함께 블루스라는 장르의 매력을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성공했다. 바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블루스”라는 카테고리를 선명하게 아로새긴 결과물이었다.

신촌블루스2.png


신촌 Blues II

신촌 블루스 / 1989.03 정규

[히트곡] 골목길



김현철 - [김현철 Vol.1] (1989)[쉬운편집 | 소스편집 | 접기]

동아기획 사단의 막내였던 김현철은 솔로 데뷔 이전부터 박학기와 장필순 앨범의 작곡과 편곡, 세션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자신의 데뷔 앨범에서 작사와 작곡, 편곡은 물론 프로듀서까지 직접 담당하면서 천재 뮤지션의 등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물론 주목할 것은 그의 뛰어난 음악성이었다. 본 작은 김현철이 흠모하던 어떤날과 시인과 촌장의 포크적인 감성에 봄여름가을겨울이 선보였던 대중가요와 퓨전 재즈의 결합으로 보다 세련된 감성의 팝 스타일을 구체화한 결과물이었다.

앨범의 대표곡이라 할 ‘오랜만에’와 ‘눈이 오는 날이면’, ‘춘천가는 기차’는 기존의 통속적인 가요의 전개와는 차별화되는 그만의 개성적인 음악 성향이 잘 투영된 곡들로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가창력은 보컬리스트로서 결코 뛰어나다고 할 수 없지만 오히려 그 어눌한 듯한 창법을 자신만의 매력으로 부각시킨 것 또한 주효했다.


무엇보다도, 같은 해 데뷔한 이승환과 이듬해 등장한 윤상과 더불어 본격적인 남성 싱어송라이터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김현철의 존재는 매우 각별하다. 이후 그는 ‘그대 안의 블루’와 같은 대중적인 히트곡으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발라드 가수로서의 입지를 다지면서 동아기획 사단 뮤지션들 중 가장 오랜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
대표곡
우리가요